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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과 포르투갈을 걷다.

by 조**
2025-11-26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걷다

바람과 빛, 사람의 온기를 따라가며

여행은 언제나 공항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이번 여정은 그보다 조금 더 일찍,
스페인과 포르투갈이라는 이름만으로도 마음이 설레던 순간부터
이미 움직이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14시간의 하늘길과 두 시간의 입국 대기를 마치고
드디어 바르셀로나에 발을 디뎠을 때,
스페인은 첫 인사를 이렇게 건넸다.

서둘지 않아도 됩니다.

그 말은 낯선 나라의 바람에도,
좁은 호텔방의 조용한 공기에도 머물러 있었다.
여행은 그렇게, 소리 없이, 그러나 분명하게 시작되었다.

스페인의 산과 도시들 사이에서

몬세라트의 거대한 바위 봉우리들은
마치 오랜 시간 동안 묵묵히 사람을 기다려온 스승 같았다.
지퍼처럼 생긴 특수 철로를 타고 오르는 기차에서
나는 한 나라의 속도가 결코 빠름에 있지 않음을 배웠다.

능선 위 작은 십자가에 닿기까지
숨은 차오르고 걸음은 느려졌지만,
산의 바람은 그런 모든 것을 감싸안았다.
그곳에서의 고요는
잠시 멈추는 것이 얼마나 큰 여유인지 알려주는 듯했다.

발렌시아의 도시 빛은
과학박물관의 거대한 유리창 사이로 부드럽게 흘렀고,
홍수로 드러난 강바닥이 도시의 중심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문득 삶도 그렇게 다시 시작될 수 있음을 가르쳐주었다.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궁전에서는
과거가 박물관 속에서 멈춰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아치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과
물 흐르듯 이어지는 정원의 소리가
시간을 한 겹씩 벗겨내고 있었다.

세비야에서는 도시 전체가 하나의 무대였다.
대항해 시대의 숨결, 이사벨 여왕의 결심,
콜럼버스의 무덤 앞에 멈추어 선 순간
새로운 세계를 향한 인간의 꿈이
얼마나 뜨거웠는지 새삼 마음 깊이 전해졌다.

포르투갈로 넘어가는 이른 아침

다리를 건너는 것만으로
국경은 조용히 지나갔다.
사라진 60분의 시간이 되돌아오는 기분,
어쩐지 젊어지는 듯한 묘한 순간.

바람 냄새는 조금 다르고
빛의 결도 달랐다.
포르투갈은 그러한 변화를 말없이 알려주는 나라였다.

포르티망의 바다 위를 달리는 보트에서는
바람이 오래된 답답함을 한 번에 털어가는 듯했고,
올리브나무에서 딴 작은 열매 하나는
이 땅의 지혜를 담고 있었다.

리스본에서는 대지진을 견디고 남은 건물들이
시간의 강을 건너온 생존자처럼 굳건히 서 있었다.
제로니모 수도원의 돌기둥 하나하나에는
오랜 인내와 신앙이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에그타르트 한 입.
그것은 이 나라가 여행자에게 건네는
가장 부드러운 안부였다.

파티마에서는
기도의 숨결이 공기 중에 고요히 떠다녔다.
종교를 넘어,
사람의 간절함이 얼마나 깊은지를 보여주는 공간.
바람에 흔들리는 묵주 소리가
긴 여행 속에서도 오래 남았다.

길 위에서 만난 삶의 조각들

파티마를 떠나 똘레도로 향하는 새벽,
버스의 불빛만이 길을 비추고 있었다.
그 시간은 마치 나를 비우고
새로운 장을 채울 준비를 하라는 듯 고요했다.

그때 들려온 건희의 집 계약 소식은
먼 길 위에서도 삶은 계속 흐르고 있음을 알려주는
작은 기쁨이었다.
신문을 갈가리 찢어놓은 로봇청소기 소식도
그날 딱 알맞은 농담처럼 따뜻했다.

가이드는 원더 이야기를 들려주며 말했다.
친절은 결국 자신에게 돌아오는 법이죠.
낯선 나라에서 느낀 사람들의 미소와 작은 도움들이
그 말의 증거처럼 마음에 남았다.

마드리드에서 바라본 예술과 역사

피카소의 게르니카 앞에서는
말이 필요 없었다.
검고 흰 선들이 뱉어내는 절규는
한 세기가 지난 지금도 여전히 생생했다.
전쟁이 남긴 상처와 인간의 어둠을
그는 누구보다 정확히 보았다.

프라도 미술관에서는
16세기의 시간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듯했고,
레이나 소피아에서는
작가가 제목조차 달지 않은 그림을 보며
우리의 삶도 결국 스스로 색을 채우는 과정이란 생각이 들었다.

여정을 닫으며

사라고사에서 마지막 야경을 바라보던 순간,
스페인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는 말이 떠올랐다.
황금빛 노을은 천천히 에브로 강 위에 번지고
도시는 은은한 불빛으로 깊어졌다.
그 마지막 밤조차 서두르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바르셀로나.
여행의 시작이었던 그곳에서
여정의 끝이 조용히 우리를 감싸주었다.
끝이라고 느껴지지 않는 끝,
또 다른 시작을 품은 종착점에 서 있었다.

인생이라는 캔버스 위에

이번 여행은
중세의 길을 걷고,
예술 속을 거닐고,
도시의 역사 위에 발을 디딘 시간이었다.

그 모든 경험은
우리의 인생이라는 캔버스에 또 하나의 색을 칠해주었다.
어두운 색보다 밝고 아름다운 색으로.

가우디의 말처럼
우리가 배울 가장 큰 스승은 자연이고,
하늘과 바람과 구름은
이 긴 여정 내내 우리에게 조용히 말을 걸어왔다.

부산 모자팀, 대구팀, 미아리 팀, 부천팀, 김포팀, 동탄팀, 송도팀, 자매팀, 친구 네 사람,
그리고 가이드, 인솔자, 기사님까지
한 배처럼 함께 움직였던 사람들이 있었다.
여행은 결국 누구와 함께했는가에서 완성된다는 것을
우리는 다시 알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건강하게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짧은 듯 길었던 이 여정은
이제 우리 안에서 오래도록 살아 있을 것이다.

그래시야스, 스페인.
오브리가두, 포르투갈.
그리고 우리의 아름다운 여정에게
고요히, 감사의 인사를 남긴다.